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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치유의 마을로 만들어 지고 있는 턱걸이 마을
작성자 주민제안지원팀 등록일 2016-12-28 조회수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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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치유의 마을로 만들어 지고 있는 턱걸이 마을

위치 : 동두천시 광암로 6번길 46 동두천 나눔의 집

연락처 : 031-867-1030

주요내용 :

동두천 턱거리 마을 역사와 턱거리 사람들 협동조합 탄생

마을화가 동아리 만들기: 마을 화가 교육, 마을 벽화 그리기

마을 신문 기자단: 마을 신문 기자단 교육, 마을 신문 창간호 발행

턱거리 마을 콘서트: 바자회, 가수공연, 노래자랑, 먹거리 장터

마을 협동조합 배움터: 마을 협동조합 교육 및 구상

소통과 치유의 마을을 위한 미래

 

깨어지고 해체된 마을 공동체의 아픔을 안고

 

동두천 턱거리지역은 미군부대 주둔과 더불어 생겨난 기지촌이다. 위안부 여성들과 미군을 상대로 장사하여 먹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 만들어진 마을이다. 미군이 감축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져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동두천시 당국에서도 턱거리 지역 보다는 보산 역 주변 지역에 유흥시설을 짓고 그 지역에 집중 투자하므로 턱거리지역은 더욱 낙후되기 시작했다.

 

최근 동두천시 화력 발전소 건설로 상황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민자치위원들이 반대했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턱거리 지역에 웬 화력 발전소냐반대했지만 주민자치위원장과 위원들의 갈등으로 위원장이 사퇴하게 되고 몇몇 남지 않은 주민자치위원들도 마을을 걱정하기보다 보상금을 통해 자기들의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결국 마을이 깨어지고 해체되고 더 이상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턱거리 사람들 협동조합 탄생

 

동두천 나눔의 집사랑나무 지역아동센터는 지역 독거어르신들과 불우 아동 가정들과 결연을 맺어 이 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가 이렇게 깨어지고 해체 되서 아파하는데 이 일만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 마을 공동체를 살리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기관 유지에 지나지 않겠구나생각하고 중대한 방향전환을 선택하게 되었다. 바로 마을 공동체 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어떻게 마을 공동체를 세울까 함께 고민하다가 마을 주민들이 경제적 욕구는 강하지만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에 미숙해서 이런 어려움이 왔으니 경제적 욕구민주적 절차를 같이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생각하게 되었고 그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선 공부하기로 하면서 2014광암동 마을학교가 시작되었다.

 

실제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시는 활동가 분들을 모시고 마을 공동체에 대해서 배우고 협동조합에 대해서 배웠다. 이 분들로부터 경기도 따복 공동체 지원센터가 설립되어 경기도에서도 주민제안공모사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지원하자 의견을 모았다. 어떤 사업으로 지원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마을 이미지를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마을 벽화 그리기 사업으로 응모하여 2015년 새싹활동(지금의 공동체 활동)을 실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주민들이 모이기도 힘들었고 주민들을 모으는 방법도 전혀 몰랐다. 아무리 플랭카드를 붙여놓아도 연락오시는 분도 없어서 좌절하였다. 간신히 주민들을 모아 벽화를 그리는데 작은 것 하나 그려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과는 미미해서 힘이 빠졌다. 그래도 대표님이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최소한 3년은 노력해야 한다독려해 주셔서 서로 힘을 내곤하였다.

 

이렇게 2014마을배움터교육, 2015년 따복 공동체 벽화그리기 활동을 통해 2016년 초 드디어 턱거리 사람들 협동조합이 결성되고 보다 다양한 방면으로 마을 만들기 활동을 진행하게 되었다.

 

마을화가 동아리 만들기

 

올해 사업으로 무엇을 할까 함께 고민하다가 마을화가 동아리를 만들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작년에는 벽화 그리기가 초점이었다면 올해는 그림을 배워 마을 화가 동아리를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자, 외부 강사가 그림을 그려주면 그림이 손상되었을 때 보수하기 힘들지 않겠느냐?, 어설프더라도 우리가 그려야 쉽게 보수 할 수 있지 않겠나? 우리 사례가 알려지면 다른 마을에서도 벽화 그려달라고 초청해서 작은 일자리라도 창출되는 효과가 나오지 않겠나? 함께 논의를 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우리 집에도 그림 그려달라말씀하시며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림을 그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배우러 오시라는 것입니다.’ 설명을 드리며 집집마다 전단지로 홍보하기 시작하자 점차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젊은 층을 예상했는데 학부모님들이 많이 신청하시고 지역주민들도 몇 분 참여하셨다.

 

이렇게 모인 주민들이 매주 금요일 혹은 토요일 오전부터 점심 먹을 때까지 교육을 받았다. 예산상으로는 5회 교육이었지만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이 그 후에도 무료로 지도해 주셨고 지금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연락드려 지도를 받는다. 학부모님 중에는 선생님 현역시절 제자도 있어서 재미있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었다.

 

교육을 마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벽화를 그렸다. 봄 주제 에는 무지개’, ‘’, ‘위안부 여성이 그려져 있는데 위안부 여성에게는 발이 없다. 특별한 이유를 물으니 아직 완성 안 된 것이라고 해서 함께 웃었다.

 

가을 주제에는 이 있는데 그 의미를 물으니 임진왜란 때 전사한 어유소 장군을 싣고 온 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실은 사슴을 그리려다가 이 사람, 저 사람 덧칠을 해서 결국 이 되었고 그럴 뜻하게 설명을 붙인 것이라고 해서 또 한 번 웃었다.

 

지나가는 주민 분들이나 경찰 분들이 벽화를 보고 많이 응원해 주셨다. 예뻐졌다 칭찬해 주시며 간식도 갖다 주셨다. 이렇게 마을 주민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생각하며 벽화 사업은 매년 지속적으로 하려고 계획 하고 있다.

<마을화가동아리 벽화 그리는 모습>

 

턱거리 마을 신문 기자단

 

턱거리 마을은 주민 화합을 위한 소통이 부족한데,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는데 서로 공감하였다. 상처 있는 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을 신문만 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마을 기자 교육을 하고 마을 신문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하였다.

 

마을 기자 교육은 5명 정도 참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7-8분이 왔다. 조그만 카페를 하시는 분이 강사로 연결이 되었다. 예전에 잡지를 만들던 분이셨다. 강의도 해주시고 신문 만드는 것도 지도해 주셨다.

 

5번의 강의는 매우 좋았지만 실질적으로 신문을 만들려고 하니까 엄두가 나지 않아서 창간호를 발행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많은 사업을 소화하느라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여 회의하고 격려하는 가운데 용기 내어 마을 신문 창간호를 준비하게 되었다.

 

도의원, 시의원, 교장선생님 등 10분 정도 섭외해서 축하 글을 받았다. 마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자 식당 사장님 인터뷰도 하였는데 이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40년 그분의 인생을 담았고 또 나눔의 집 결연과정 할머니들 4분의 이야기도 실었다.

 

편집위원과 같이 한 달에 두 번 정도 모여 논의를 하였다. 강의해 주신 분도 주도적이고 전문적으로 아시는 분이어서 선생님 지도하에 잘 준비할 수 있었다.

 

앞으로 온라인 신문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은 주민들이 인터넷을 전혀 하실 수 없으니 지금은 미루어두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지면 신문을 좀 만들어 보고, 우리 마을이 동두천 시내에 소문이 나면 그때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서 온라인 신문도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