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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레클리스 협동조합 카페
작성자 주민제안지원팀 등록일 2017-01-10 조회수 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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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레클리스 협동조합 카페

이 름 : DMZ 레클리스 협동조합 카페

주 소 :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 11-16

전화번호 : 031)835-5007

내 용 : 농촌총각이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으로 다국적

결혼이주 여성이 늘어나며 서로 소통하고

일거리창출을 만들어낸 카페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에 위치한 DMZ 레클리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레클리스 카페 전경>

 

단풍이 깊어가는 가을

 

평화로를 벗어나 백학방향으로 외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작은 시골읍내 같은 동네가 나타나고 옛스런 간판들과 네온사인들이 보이는 나지막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6.25전쟁 후 60~70년대의 DMZ 가까이 생겨나기 시작한 번화가를 보고 싶다면 실망하지 않을 거리다. 이 거리 초입 도로와는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깔끔하게 인테리어가 된 카페가 보인다. 여느 카페가 그렇듯 안이 훤히 들여는 보이는 유리창을 통해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자그마한 키의 중년 여성이 일하다 잠시 손을 놓고 나온 양, 팔에 토시를 끼고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도 보인다. 옆집 아주머니의 푸근함으로 말이다. 바로 DMZ 레클리스 협종조합 남궁금복대표다. 카페에 들어서면 작은 갈색의 말 인형 하나가 문 앞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이 말을 귀엽고 친근함을 주는 캐릭터로 만들어 근처에 세워놓았다. 레클리스라고 하는 이 말은 왜 여기에 서 있는 걸까? 필시 많은 사연이 있어 보인다.

 

 

 

<레클리스 모형과 캐릭터>

 

왜 레클리스지?

 

6.25전쟁 당시 연천군 매향리에서는 1953년 3월 26∼30일까지 5일간 미 해병 1사단이 중공군 120사단을 방어하기 위한 네바다 전초전투 또는 매향리 전투라 불리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레클리스는 5일간의 전투 동안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총 386회(56㎞) 보급기지와 고지를 왕복하며 탄약과 포탄을 실어 날랐다. 고지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지만 탄약이 떨어져 중공군의 거친 공세를 막아내기 어려워 포기하려 할 때마다 레클리스가 눈과 다리에 부상을 입으면서도 탄약을 실어오는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어 다시 싸웠다고 한다. 말들은 겁이 많아 쉽게 놀라곤 하는데, 여느 말들과는 다르게 쉽지 않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에 ‘무모할 정도(reckless)’로 용감하다라는 의미의 ‘레클레스’ 라는 별명이 붙어 이후에는 이름이 되었다.

피해자만 가득한 그리고 누구도 승리자가 되지 못한 매향리전투에서 레클리스의 활약은 이 마을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레클리스 하사의 활약 당시의 모습
 무모하지만 용감하게 묵묵히 탄약을 싣고 오간 레클리스의 이야기처럼 마을 사람들도 카페운영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무모하지만 용감하게’라는 기치를 내걸고 마음을 모았다.

 

DMZ에 사는 사람들

 

6.25전쟁 이후 휴전선이 그어지며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의 분단국이라 국가 방위의 1번지 DMZ에는 군장병들이 많은 곳이다. 백학 두백로에서 차로 조금 이동하면 바로 인근에 비공개 제1땅굴이 있을 만큼 북한의 전쟁준비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철책선 안에는 많은 인삼농가가 인삼을 재배하고 있으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함께 병행되고 있는데 이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검문을 통과해야만 들어가서 농사일을 하고 나올 수 있다. 산업공단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농사가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군부대가 많다보니 군가족들이 장병들 면회 오면서 먹거리와 쉼터가 필요하기에 군장병위주의 상권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요즘 풍요롭게 자라난 전후세대는 제한된 지역에서 견뎌야 하는 DMZ생활을 이겨내지 못해 잦은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군에서는 현역병들을 부사관으로 바꾸는 상황이어서 현역병들을 찾아오는 가족이나 지인들의 면회가 줄어 그나마 시골에 형성된 상권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다방도 6곳이나 되던 것이 1곳만 영업을 할뿐이다. 주민들의 시름도 점점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 지역을 아끼는 사람들의 노력이

활기찬 거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뭐지

 

점점 줄어가는 만남의 장소는 이곳을 찾는 이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기에 이들의 휴식처가 되어줄 곳이 필요하였다. 또한 동네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장소도 필요 하였다. 다방이 있긴 하지만 다양한 계층이 편안하게 드나들며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엔 폐쇄적인 이미지를 감출 수 없다. 어두침침하고 쌍화차를 마시는 어르신들의 단골집이 되어가는 시골 다방은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어색하게 마주치는 도회지의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와 닿기에 섣불리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조금만 움직이면 철책이 있어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인구가 많지 않아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질 수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기에 흔하디 흔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인근 연천이나 전곡 근교로 움직여야 한다.